조용한 기록들

차가운 하늘 아래, 따뜻한 발견

햇빛결 2025. 6. 27. 09:26

 

그날 하늘은
조금 무서웠다.

비가 올 듯 말 듯,
먹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구름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이 멈춘 것 같은 기분.
잠깐, 현실이 끊긴 느낌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여행 얘기를 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꽤 웃음이 많았다.
그런데 친구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딱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이다.

 

나는 그 순간이
그저 이상한 하늘,
기묘한 날씨,
잠깐 지나가는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친구는
거기서 뭔가를 본 거다.
그리고 그걸 꺼내 보여줬다.

 

알고 보니
얘, 사진에 소질 있더라.
진짜로.

 

그런데 사진에서 더 놀라운 건
빨간 지붕이었다.

구름은 이렇게 차갑고 무서운데,
그 집은
혼자 또렷하고 선명했다.
심지어 이상하게도,
위험해 보이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이 좋았기 때문이겠지.
말들이 따뜻했기에,
차가운 하늘도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몰랐던 친구의 면을 알게 되었고,
그걸 사진 한 장으로 보게 되었다는 게
참 이상하고도 좋았다.

 

어쩌면 이 사진은
그날의 분위기와 정확히 반대인데,
그래서 더 진짜 같은지도 모르겠다.

겉은 서늘했지만
속은 따뜻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