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시의 감정

“별일 없던 주말, 그리고 나다운 이야기 하나”

햇빛결 2025. 6. 23. 09:00

 

느긋했던, 일요일.
밥은 제대로 차려 먹기보단
그냥 샐러드 하나로 해결하는 주말.

한주동안 쌓인 다림질을 해놓고
느린 속도로 집 안을 한 바퀴 돌면서
조용히 일요일 오후를 즐긴다.

사실 나는 낮잠을 자면 두통이 오는 체질이라
웬만하면 자지 않지만,
주말 아침에도 일찍 눈이 떠지는 요즘은
가끔 낮잠에 빠져드는데,

그게 또 한번씩 달콤할 때가 있다.
무거운 몸보다
정리된 마음이 더 오래 남는 느낌.

그리고 오후엔
조금 색다른 시간을 보냈다.

‘케이팝데몬헌터스’.
넷플릭스에서 나온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인데,
처음엔 가볍게 틀어놓았던 게
보다 보니 정말 빠져들었다.

갓을 쓴 남자 아이돌,
무속신앙과 해태 같은 상징들,
그리고 콘서트 시작 전에 먹는 김밥과 라면.

이게 너무 한국적이라
한 번 피식 웃고,
다시 곱씹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그게 단순히 ‘한국풍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 문화를 관찰하고, 정성껏 연구해서 만든 디테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놀랍게도, 이 애니는 한국에서 만든 게 아니다.
넷플릭스 제작.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나는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싸우는 서사,
그 안에서 생기는 팀워크, 균열, 감정들.
그걸 아이돌과 콘서트 세계관 안에 풀어냈다는 게 너무 내 취향.

부적을 휘두르거나 하는 전통적인 묘사도 없고,
스타일리시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아이돌 데몬 헌터’라니

그리고 뭐,
나는 덕후니까.

마블 영화는 거의 다 챙겨봤고,
탐 크루즈는 내 첫사랑이었고,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에 빠질 준비는 늘 되어 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던 주말,
평소와 다르지 않은 루틴 안에서
그저 하나의 이야기와 잠깐 설레는 시간을 나눴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이렇게 좋은 날이 될 수 있다는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김밥과 라면 먹고
악령을 퇴치하러 가는 아이돌이라니.
나는 이런 얘기… 좋아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좋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