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시의 감정

주말의 침구 정리와 향기 이야기

햇빛결 2025. 9. 23. 09:01

 

지난 주말엔 침구를 싹 정리했다.
여름에서 가을, 또 곧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니까, 하루 종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갔다. 

이불빨래는 늘 대형 건조기를 쓰고 있어서,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고 흐린 날씨였다. 덕분에 컨디션도 조금 무거웠는지 꿈도 별로였고. 대신 일요일은 정말 “아, 이게 가을 하늘이지” 싶은 만큼 청명했다. 온 집안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청소는 늘 하는 거라 따로 손댈 건 없었고, 그저 세탁기와 건조기만 부지런히 돌아간 하루였다.

 

새로 바꾼 건조기 시트 향이 마음에 들어서, 방 안에 은근하게 퍼지는 그 향이 좋았다.

뽀송하게 마른 시트와 커버, 이불까지 갈아입히고 나니 침대에 눕는 순간이 참 포근했다.

별다른 건 아니지만, 그런 순간이 주는 작은 즐거움이 꽤 크다.

 

향 얘기가 나와서 문득 생각났다.
어릴 적부터 향을 좋아해서 향수를 200개 넘게 모은 적도 있다.

브랜드나 크기 상관없이, 선물도 많이 받았고, 그때는 그저 향을 즐기는 게 좋았다.

첫 향수는 ‘일랑일랑’이었는데, 꽃향이 너무 좋아서 몇 통이나 썼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머스크와 비누향, 여름엔 시원한 플로럴, 최근엔 피오니와 무화과,

은방울꽃에 머스크가 섞인 향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 내 시그니처는 무화과 머스크다. 겨울 공기와 잘 어울려 잔향이 스치듯 남는 게 마음에 든다.

계절에 따라 가볍게 바꾸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찾는 건 강하지 않고 은근히 남는 향이다.

 

 

비염이 생긴 이후로는 향수를 예전처럼 자유롭게 쓰진 못한다.

대신 디퓨저, 캔들, 인센스, 사쉐 같은 걸 집에서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선물도 많이 받는 편이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골라 쓰는 재미가 있다.

요즘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생장미향 사쉐. 드레스룸이나 차에 두었는데, 문을 열거나 차에 타는 순간 은근히 스며드는 그 향이 꽤 괜찮다.

 

향은 이제 내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공간마다 분위기를 바꾸는 또 다른 스타일링이 되었다.

옷을 고르듯, 음악을 고르듯, 향을 고르는 일. 그래서일까, 계절을 맞이하며 새 침구로 갈아입히고,

집안에 퍼진 은은한 향기를 느끼는 순간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