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변화
예전의 집은 나에게 쉼의 공간이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거나, 어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이라는 이정표만 봐도 한숨이 나왔다.
그만큼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내가 요즘 내향형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실제로 MBTI를 다시 검사해볼 만큼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무거운 책임감, 맞지 않는 부모와의 관계, 상처만 주는 가족 속에서 묵묵히 도리라는 이름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집에 있기보다, 어디론가 떠나는 게 숨통이 트였으니까.
여행은 나에게 도피이자 숨구멍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번 추석 연휴가 길어지면서 또 여행을 가고 싶다가도, 올해 이미 여러 번 다녀온 터라 망설여졌다.
대신 집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는 일에 더 마음이 간다.
내 취향대로 그릇이나 컵, 액자, 소품을 하나씩 사 모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저 생활을 위한 물건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집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컵 하나를 고르면서도 ‘이게 내 공간에 잘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물건인데, 지금은 오래 들여다보고 망설이게 된다.
너무 오랜 시간 이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서 감이 많이 죽어 있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차차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집이 점점 내 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예전엔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천천히 돌아와 머무르고 싶은 곳이 되어가는 중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렇게라도 내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여행에서 찾던 해방감을 이제는 집에서도 조금씩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앞으로도 집이 나를 편안하게 맞아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이 평화가, 제발 오래도록 깨지지 않기를,
그치만 여행은 또 가고 싶다 :)